1991년, 산골 소년이 정보선생님 된 날부터 32년간,
컴퓨터실 불을 끈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뒤처지지 않아도 돼. 같이 가면 돼."
교직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것을 하나만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이것입니다.
1991년 3월, 얕은 컴퓨터 지식 하나를 들고 교단에 섰습니다. 방과후 혼자 남아있는 학생들이 눈에 밟혔습니다.
"저 아이들에게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심어줘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컴퓨터 동아리 전산부를 만들었습니다.
1998년 멀티미디어실 준공과 함께 진짜 도전이 시작됐습니다. 매주 월·수·금, 방과 후 전산실에서 홈페이지 제작·애니메이션·정보올림피아드·창업경진대회를 밤새 공부했습니다.
수업료도, 교재비도, 보상도 없었습니다. 오직 '공짜 야식' 하나로 유혹했을 뿐입니다.
이 밤샘 동아리는 14년간 한 해도 쉬지 않았고, 2014년 도제학교 운영을 위해 전산부 제자가 후배 교사되어 바통을 넘기기까지 23년간 경주정보고의 컴퓨터실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멀티미디어실 준공 후 본격화된 밤샘 동아리. 학생들은 새벽까지 홈페이지와 애니메이션을 만들었고, 이 경험이 그들의 첫 번째 포트폴리오가 되었습니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습니다. ㈜DAUM 공식지원 동아리 선정, 대한민국 인재상, 교육부 장관상 포함 전국대회 1위 7회. 경주정보고가 전국 무대에 이름을 알렸습니다.
저는 그저 밤새 출출해 하는 아이들에게 라면을 끓여줬을 뿐입니다. 나머지는 전부 학생들이 해냈습니다.
밤마다 전산실 불이 켜져 있으면, 그건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남아 코딩하고 있다는 신호였습니다.
저는 그 아이들 곁에서 라면을 끓여주고 옆에 앉아 있었을 뿐입니다.
그 아이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밤을 새워 개발하고, 직접 패키지까지 만들어 완성한 것이
바로 학교 컴퓨터실 관리 프로그램 EDUSYS입니다.
선생님이 시킨 것도, 과제로 낸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우리가 쓸 수 있는 걸 만들어보자"는 아이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물이 KBS 뉴스데스크 전국 방송을 탔습니다.
한국일보·매일신문이 기사를 썼고, 포털 메인화면에 올랐습니다.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정식 저작권 등록까지 마쳤습니다.
그 자리에 지도교사로 제 이름이 있다는 것이, 저는 지금도 그저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만들어 준 게 아닙니다.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디자인한 CD 패키지입니다. 이 라벨 하나에 아이들의 밤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컴퓨터실 PC 관리, 사용 현황 모니터링, 학습 이력 관리 기능을 담았습니다. 이걸 만든 건 대학생도, 전문 개발자도 아닌 경주정보고 고등학생들이었습니다.
저는 그저 라면을 끓여줬을 뿐입니다.
전국 방송에 나온 것도 아이들의 노력이고,
저작권 등록과 창업동아리 사업으로 발전시킨 것도 아이들의 노력입니다.
저는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 그것으로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 설탕과소금, 전산부 지도교사 시절을 돌아보며
공업계의 전유물이었던 국책사업에 상업계 학교가 처음 이름을 올린 이야기입니다.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의 특성화고 인력양성사업은 원래 공업·기계계열 학교 중심의 국책사업이었습니다. 중소기업에 맞춤형 기술인력을 공급한다는 취지 때문에 "상업계는 해당 없음"이 암묵적인 전제였습니다.
그 벽을 처음 깬 것이 경주정보고였습니다. 정보·상업 분야도 중소기업 현장에서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설득하고 증명해 2011년 비공업계열로는 전국 최초로 선정되었습니다.
학교당 평균 1억 원 이상의 교육과정 개발비·기자재·현장실습비가 지원되어 학교 직업교육의 수준을 크게 끌어올렸으며, 이 사업은 이후에도 학교에 지속적으로 이어져 학교 발전의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공업·기계계열 중심이던 국책사업에 상업계로는 전국 최초 진입. 첫 취업맞춤반 수료식이 지역 언론에 보도되며 상업계 직업교육의 새 모델로 주목받았습니다.
7년간 최우수·우수 평가를 거듭 받으며 상업계 인력양성 모델의 가능성을 전국에 입증했습니다. 취업역량강화사업과 연계해 2015년 교육부장관 표창도 받았습니다.
공업·가사계 위주였던 글로벌현장학습의 벽을 상업계로 넓히고, MBC 전국시대 3회 방영으로 전국에 그 가치를 알렸습니다.
교육청 글로벌현장학습은 사실상 공업·가사계 위주였습니다. 상업과는 해외 취업·인턴십 연결이 어렵다는 인식 때문이었습니다.
이 한계를 넘어 2013년 경북교육청 최초로 사무직 인턴십(미국 LA) 교육부 사업단을 실현하고, 이후 중국·베트남·체코·싱가포르 등으로 무대를 넓혀 7년간 연속 운영했습니다.
우수사업단으로 4회 선정되어 지도교사 직능원장상·교육부장관상을 받았으며, 2015년에는 MBC 전국시대가 상해 편을 방영하고 상해한인신문에도 기사가 실렸습니다.
2017년에는 국민의힘 당 대표와 교육감이 직접 격려 방문하였고, 2019년에는 체코 편이 MBC 전국시대 2부작으로 전국 방영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글로벌현장학습 우수사례로 국민의힘 당 대표와 경상북도 교육감이 직접 현장을 방문하여 격려했습니다. 상업계 직업교육의 모범 사례로 공식 인정받은 순간입니다.
단순 연수가 아닌 현지 교육기관과 연계한 실질적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상업계 학생들이 해외 취업과 실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열었습니다.
혼자였다면 불가능했습니다. 함께해 준 학생들과 동료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들입니다.
32년의 여정과 함께해 준 학생들, 동료들과의 소중한 순간들
일자리를 뺏는 것은 AI가 아니라
AI를 잘 활용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배우고, 함께 성장합시다.